월산비정은 양평 월산리에 있는 단독주택으로, 기존 전원주택단지로 조성된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생활에 익숙한 건축주는 해당 단지 전원주택에 전세를 얻어 소위 시골에서 일 년 살아보기를 통해 전원생활과 전원주택에 대한 이런저런 문제점을 체험한 후 설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 일 년 살아보기는 자연과의 교감, 평온한 시골 생활 등과 같은 전원 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보다, 라이프 스타일과 공간,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월산비정에는 여느 전원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당이 없는데, 이는 시골 생활 체험을 통해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반영한 결과이다. 마당 대신 오롯한 프라이버시를 갖춘 중정을 선택할 수 있었고, 마당 대신 옥상에 옥상정원을 선택할 수 있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시골 전원주택의 넓은 마당이란 존재는 자칫 삶이 힘들어질 수도 있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패시브 하우스 기술을 적용하게 된 이유 역시 집과 삶에 대한 고민의 반영이다. 디자인의 문제를 떠나 집을 짓고 살면서 가장 불편한 점이 잘 못 설계, 시공된 집을 유지 관리하는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집이 건강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명제는 당연한 사실일 것이다.


정원이 있는 중정은 덩그러니 비워져 있는 중정과 사뭇 다른 사계절의 시간을 담은 한 편의 그림 같은 공간을 선사해 준다.
정원이 있는 중정은 정교한 의도를 갖고 계획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연히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다.
정원의 모습은 쉽게 예측될 수 없으며 정원 디자인은 정원의 모습을 쉽게 예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할 수 있어야 한다.
덕분에 월산비정의 정원은 인위적인 오브제같은 정원이 아닌 다소 거칠지만 공간과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정원을 조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정과 정원은 주제와 변주를 반복하는 음악적 관계로, 중정과 정원이란 디테일 문제 이전에 공간과 장소라는 분위기와 가치에 대한 생각이 선행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주제와 변주는 상대적인 관계로 고정불변의 절대적 대상으로 간주할 필요와 이유가 없다.




중정 주택은 중정을 중심으로 개별 단위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거실을 중심으로 단위 공간들이 배치된 아파트 평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중정 주택은 분명 낯선 공간 구조임은 틀림 없다. 중정과 나란한 복도 공간은 분명 낯선 동선이며, 로스 공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단위 공간은 비교적 명확한 용도적 의미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복도라는 동선은 분명 기능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만, 디자인에 따라 기능적이지만 기능적 이상의 의미를 내포할 수도 있다.
60평에 달하는 면적이지만 소위 방이라는 단위 공간이 2개에 불과한 공간 구조 역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분명 낯설지만 그렇다고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해석은 분명 저마다의 목적과 이유를 근간하고 있다.




양평 단독주택의 외관은 건축 디자인에서 흔한 조형성이나 특별히 기교적인 디테일이 발견되지 않는다.
설정한 천정고에 맞게 창호 높이가 계획되었고, 역전지붕을 시공하기 위한 파라펫 높이 등이 필요에 따라 계획되었다.
매스, 조형적 관점에서 외형을 조작하는 것과 같은 디자인 행위가 없었으며, 주택에 필요한 품질과 성능에 충실하기 위한 에너지 해석과 표준 디테일에 따라 충실하게 지어졌다.
외관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패시브 하우스이기 때문이라 아니라, 단지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남을 의식한 집이 아닌, 철저하게 내부 공간과 라이프 스타일에 충실한 집을 짓고자 했다.



양평 단독주택 월산비정에는 마당은 없지만 옥상 정원이 있다.
마당이냐 정원이냐 하는 문제는 결국 집 주인의 삶과 라이프 스타일의 문제일 뿐이다. 마당이 될 수도 있고, 정원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옥상 정원이 있는 것이다.
분명 낯선 방식이지만 삶의 방식과 어떻게 관계성을 맺는지에 따라 매력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외형적으로 다소 폐쇄적인 집이지만 집주인의 성격도 그렇고 개방적인 주택이다. 물론 오롯한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영역이 있으며, 타인에게 개방되어 있는 순간에도 타인에게 개방되지 않았으면 하는 공간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공간을 명확하게 성격과 분위기를 규정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만, 이런 생각의 연장에서 옥상정원은 마당과 다른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 장소와 공간이 된다.






월산비정의 주택 인테리어는 특별히 장식적인 요소는 없다.
집주인과의 협의 과정에서도 아파트 인테리어서 흔히 다루어지는 ‘아트월’ 같은 단어는 언급되지 않았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장식은 순간의 희열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거주함의 의미 있는 일상의 가치를 선사할 수 없는 것처럼, 주택 인테리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생활의 불편함이 없도록 쓰임에 따른 충실한 가구 계획과 필요한 요소 하나하나 공정 하나하나를 완성도 있게 마무리하는 것만으로 주택의 인테리어는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내 공간에 중정의 정원과 바깥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 특별한 장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월산리 단독주택 월산비정은 한국패시브건축협회 인증 패시브 하우스이지만, 여느 패시브 하우스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패시브 하우스는 건축물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정밀하게 해부, 해석할 수 있는 개관적 기술을 제공해 주고 있음은 자명하다.
하지만 기술은 삶의 가치와 어우러질 수 있을 때 기술 본연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패시브 하우스를 위한 패시브 하우스를 짓고자 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월산비정의 공간 구성은 패시브 하우스라는 기술적 관점에서 불리한 점이 한두 가지 아니다. 상대적으로 큰 A/V값은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디자인의 의미는 이러한 지점에서 기술과 공간의 가치를 일상 삶 속에서 의미 있는 상호 작용의 균형을 찾는 데 있을 것이다.



중정이란 환경은 정원의 식생에 있어서도 조금 특별한 환경을 제공해 준다.
에워싸인 중정은 적당한 햇빛, 적당한 바람과 함께 저절로 온유한 환경을 갖추게 된다, 특별한 식생 환경만큼 중정과 연계된 내부공간은 사람에게도 특별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패시브 하우스의 기술적 메카니즘이 물리적 공간의 쾌적성을 보존해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중정의 특별한 환경은 거주자에게 단순한 감정과 감성 이상의 심미적 안온함을 제공해 주고 있다.
정원은 단순히 식물을 가꾸는 장소가 아니라, 삶과 융해된 공간이자 장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