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가지 오류, 고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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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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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소위 시각예술, 조형예술과 비견되는 경향이 있으며, 경제 용어 중 사회간접자본, 사회기반시설으로 번역되는 SOC(Social Overhead Capital)는 소위 토목 중심의 인프라스트럭쳐(Infrastructure)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이지만 상식과 일반은 개연성이 크다는 의미이지 절대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어떤 개념을 논하고자 할 때 유의할 점이 있는데, 번역의 오류이다. 서양의 관점에서 아키텍처(Architecture), 시빌 엔지니어링(civil engineering) 등의 의미와 작동방식은 동아시아에서 아키텍처, 시빌 엔지니어링 등과 사뭇 적지 않은 간극이 있다.
‘아키텍처’는 ‘건축(建築)’, ‘시빌 엔지니어링’은 ‘토목(土木)’으로 각각 번역되었고, 대부분 일제 강점기 시대 수용된 개념들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한다. ‘설계(設計)’, ‘건물(建物)’, ‘건설(建設)’ 등의 개념 역시 서양의 ‘디자인(Design)’, ‘빌딩(building)’, ‘컨스트럭션(construction)’과 대응되는 의미이나, 현재까지도 현실에서의 작동방식은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주도적으로 서양 문물을 수용한 일본에서조차 혼선을 발견할 수 있는데, 아키텍처를 조가(造家)라는 개념으로 수용하여 1886년 조가 학회를 설립하였으나 10여 년 만에 건축학회로 개칭하기도 했다.
표준화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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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선진 문화와 후진 문화의 틀로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 표준화 등의 이면에는 대상 자체의 문제 이외의 다양한 관점의 헤게모니가 내포될 수밖에 없다. GDP(1인당 국내총생산) 4만 달러 진입을 목전에 둔 국민국가의 전문가 집단에서 종종 언급하는 소위 ‘외국에서는~’이란 말로 논리의 근거로 삼는 것은 대상과 현상의 적절한 솔루션이 될 수 없다.
미래의 비전과 혁신을 논함에 있어 글로벌 스탠다드는 중요한 지표임은 틀림없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자체가 미래에 대한 유일한 정답이 아나라는 의미이다. K 문화의 글로벌 스탠다는 한국이며, 김환기의 푸른색과 추상미술은 황금보다 값비싼 청금석의 푸른빛과 서양의 화려한 추상미술 못지않은 고유성으로 글로벌 스탠다드 속에서 그 가치를 입증한 바 있다.
일본의 현대 건축은 일찌감치 글로벌 스탠다드와 무관한 독보적인 고유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중국의 현대 건축 또한 나름의 고유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반면, 한국의 현대 건축은 여전히 모호한 밤안개 속에서 고유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 대한 숙고가 중요하다.
빈자의 미학, 묵상과 같은 허울 좋은 개인의 선언문 몇 글자로 고유성은 발현될 수 없으며, 검증 없는 맹목적 개념에 대한 막연한 추종과 사대(事大)로 문화적 독창성을 발현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마당, 마을, 골목, 자연을 닮은 건축과 같은 인문학에 대한 낭만적 오마쥬는 말 그대로 유사 인문학일 뿐 문화적 고유성의 발현과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다.
뜻은 갸륵하나 객관적 사실관계에 입각한 정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막연한 성리학적 전통의 위정척사 운동과 같은 오류를 인정하고, 주체적이고 자주적이며 무엇보다 객관적 사실관계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또한, 객관적 사실관계에 입각한 구체적인 실천 행위 등을 독려함에 아낌이 없어야 하며, 날 선 비판일지라도 객관적 사실관계에 부합한다면 논쟁에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개념화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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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혹은 선진국의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개념에 대해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서양의 전통적인 아키텍처의 영역이 근대를 통해 엔지니어링 중심으로 대체되면서 축소된 아키텍처의 영역이 의지할 곳을 찾은 것은 소위 예술의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건축은 엔지니어링, 예술 등의 영역과 종속된 관계를 설정하지 않았다. 새롭게 변화된 사회 환경 속에서 건축의 DNA를 새롭게 전이하고 고유성을 새롭게 설정한 것이 현대 건축의 맥락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성당, 부르넬레스키의 피렌체 대성당 돔은 현대적 의미의 건축과 다른 업역이며, 다빈치, 라파엘로의 회화 또한 현대적 의미의 예술과는 사뭇 다른 업역이라 해야 한다. (물론 유사점도 있다)
서양에도 아키텍처에 대한 개념, 작동방식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있으며, 아키텍쳐의 의미는 본질적인 오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김영철은 2018년 논문 <‘건축(建築)’과 ‘아키텍처(Architecture)’에서 아르키텍토니케(Architektonike) 개념의 수용에 관한 연구>에서 서양의 아키텍쳐의 의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아르키텍토니케’, 이를 차용한 비트루비우스의 ‘아키텍투라’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원리적 구축’이란 의미에 부합하지 않고 있음으로 현재 아키텍쳐의 개념에는 오류가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명목으로 비판 없는 맹목적 수용은 실효성 있는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될 수 없다. 건축을 예술과 견주며 건축가를 예술가로 치환하고자 하는 국내 건축가들의 애틋한 노력은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김영철의 논문에서 현대 서양의 아키텍쳐의 개념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아르키텍토니케’의 의미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재의 아키텍쳐의 의미를 아르키텍토니케로 돌려 놓아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한다면 이또한 실효성 있는 가치 창출과 무관한 결론이 될 것이다. 건축은 개념, 논리의 투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표준화에 대한 경계와 함께 이러한 오류를 건축의 고유성으로 일반화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주의 역시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과거와 달리 글로벌과 로컬의 관계를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점과 같은 관계로 설정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못하다. 기후환경, 에너지, 자원 등의 문제와 더불어 인공지능, 로봇, 5G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객관적 사실관계에 입각한 정세 판단이 훨씬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로컬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특성에 맞게 구체적인 완결성의 실현 여부가 핵심일 것이다.